[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집에 들어서는 순간 고소한 음식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신발을 벗기 바쁘게 허둥지둥 주방에 들어가 보니 그릇에 수북하게 담겨져 있는 만두가 아직도 따끈따끈하다. 그제야 동지날 팥죽 먹는 것이 전통적인 민속습관이지만 올해는 애동지(음력으로 초순에 드는 동지)라서 만두도 먹어야 된다고 하시던 엄마의 말씀이 떠오른다. 명절이나 기념일이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우리 집 식탁에까지 놓고 가시는 우렁각시는 다름 아닌 우리 엄마다. 그 어떤 산해진미와도 비길 수 없는 엄마가 정성들여 만드신 만두를 나는 볼이 미여지게 집어먹는다. 그러면서 불혹의 나이에도 부모님 사랑을 넘치게 받고 있다는 현실에 나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남실거린다. 명절마다 전해져 내려오는 유래에 따라서 지정된 음식을 먹으면 무조건 액운을 쫓고 만사형통하다는 말이 물론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것을 어기면 마치 큰일이나 나듯이 늘 잊지 않고 챙겨주신다. 매년 음력설이 지나서부터 엄마는 정월대보름에는 꼭 부럼을 깨먹어야 부스럼이 나지 않고 일년 동안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말씀해주신다. 귀띔해주시고도 혹시 지나쳐 버릴까봐 엄마는 오곡밥에다가 땅콩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나는나입니다 나는봄의들판에서어여쁨을뽐내는장미꽃도길섶에소문없이피어난민들레꽃도아닙니다나는아득한벼랑가에솟아나서흘러가는구름을비웃는소나무도강가에흐드러져산들바람에도춤을추는버드나무도아닙니다 나는나입니다 나는여기저기에서아무렇게나뒹구는이름없는조약돌도아니고뭇사람들이쳐다보는하늘가에서도고한빛을뿌리는그어느성좌의이름있는별도아닙니다 나는나입니다 내가어찌그저한송이꽃이나한그루나무나또돌이나별이겠습니까나는그것들과그리고그보다더많은것들이어우러진통일체이며세계이며우주입니다 나는나입니다 자꾸만그저꽃이나나무나돌이나별이되라고하지마십시오그것들은나의머리카락한오리나귀나코나눈밖에또무엇이겠습니까 나는나입니다 그리고당신도당신이기를바랍니다. 1985. 7. 1. 해설 / 인간의 자아실현을 호소 석화는1958년 길림성 룡정시에서 출생했다. 1980년대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1986년 시 “나는 나입니다”로 시간의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 시는 당시의 시관념 갱신에 크게 이바지한 작품으로 창조주체의 각성과 인간의 자아실현을 호소하고 있다. 시에서 시적화자는 “나는 나다. 돌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많은 것들이 합쳐진 통일체이며 하나의 세계이며 우주라고 하면서 자꾸만 꽃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이불장을 펼치면 아롱다롱 꽃이불들이 나를 보고 해시시 웃는다. 그렇다. 지금은 집집마다 이블장이 넘쳐나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철철이 자기 이불이 따로 있고 폭신폭신한 꽃이불 속에서 모두들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쪼들리게 가난했던 지난 세기 50년대 그 시절 우리집 농짝위에는 이불 두 채가 횡뎅그레 올라 앉아있었는데 이 허름한 이불 두 채가 우리 온 집안의 큰 재산이었다. 엄마는 31살에 내가 돌도 안 되던 해에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밥그릇 하나라도 줄이라”는 삼촌의 뜻에 쫓아 언니를 일찍 시집보내곤 철모르는 우리 3남매를 데리고 시골에서 아글타글 고된 일을 하시면서 눈물겨운 나날을 보내었다. 세월이 흘러 1957년 큰 오빠가 연변1중에 입학하였다. 학비와 숙사비도 마련해야 했지만 이불도 큰 문제꺼리였다. 우리집 형편에서 새 이불을 해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엄마는 말없이 이불 한 채를 뜯어 씻고 끓이고 바래워* 다듬질하였다. 방치돌*에 두드리고 대명대*에 담아 다듬은 덕분인지 눈같이 하얀 이불은 웃었다. 오빠는 엄마의 정성이 슴배인* 이불짐을 지고 도시로 떠났다. 집에는 이불 한 채만 달랑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사과도 배도 아닌 것이, 연변사과배 사과도 아닌 것이 배도 아닌 것이 한 알의 과일로 무르익어 가고 있다 백두산 산줄기 줄기져 내리다가 모아산이란 이름으로 우뚝 멈춰 서버린 곳 그 기슭을 따라서 둘레둘레에 만무라 과원이 펼쳐지었거니 사과도 아닌 것이 배도 아닌 것이 한 알의 과일로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이 땅의 기름기 한껏 빨아올려서 이 하늘의 해살을 가닥가닥 부여잡고서 봄에는 화사하게 하얀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무성하게 푸름 넘쳐 내더니 9월, 해란강 물결처럼 황금이삭 설렐 때 사과도 아닌 것이 배도 아닌 것이 한 알의 과일로 무르익어 가고 있다 우리만의 “식물도감”에 우리만의 이름으로 또박또박 적혀있는 ― “연변사과배” 사과만이 아닌 배만이 아닌 달콤하고 시원한 새 이름으로 한 알의 과일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해설 연변 지역의 향토색이 물씬 풍겨 나오는 고유한 과일 “사과배”는 연변의 자연을 대표한다. “사과”와 “배”의 결합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조화의 세계를 지향하는 동양정신의 상징을 “사과배”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엄마! 무지개가 비꼈어요! 빨리 와봐요! 빨리빨리!” 아들의 다급한 외침소리에 나는 신나게 해대던 칼질을 멈추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동녘하늘에 칠색무지개가 곱게 걸려있었다. 참 간만에 보는 무지개라 너무나도 반가웠다. “무지개의 끝에는 보물이 묻혀있단다.” 아들과 함께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뜩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들, 저 무지개의 끝에 보물이 묻혀있대.” “와! 정말요?” “그래, 엄마가 어릴 적에 너의 증조할머니께서 그렇게 알려주셨거든.” “무지개의 끝에 층집이 있는데… 그럼 층집 밑을 파봐야 하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아들의 말에 나는 해일(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아들, 엄마랑 보물 찾으러 갈래?” 나는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아들을 차에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그래, 어디든 쫓아가보는 거야.) 아들애와 함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서 덩달아 신났다. 비가 온 뒤라 거리는 유달리 깨끗해보였다. 하늘에 걸린 무지개 덕분인지 지나가는 행인들의 얼굴마다에 미소가 어려 있었다. 한참을 달려 드디어 아까 우리 집 창문으로 내다본 그 층집아래에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 조용히 들여다 볼 수 있으므로 / 그래, /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 여럿 속의 삶을 / 더 잘 살아내기 위해 / 고독 속에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다.“ 이 시는 한국의 유명한 시인 이해인 수녀님이 쓴 “고독을 위한 의자”의 몇 행이다. 엄마네 집 벽에 붙어있는 이 시를 나는 이젠 거의 외울 정도이다. 그러면서 나는 오늘도 거실 의자에 앉아 이 시를 읊조리며 고독을 달래고 있을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메여온다. 당뇨로 고생하시던 아버지를 십여 년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시고 홀로 계신 엄마에게는 고독이라는 무서운 친구가 찾아왔다. 종가집 큰며느리로 시집을 와서 시부모와 증조할머니, 어린 시누이에 자기 자식 삼형제까지 모두 합하여 아홉 식솔이라는 대가정속에서 생활하시던 엄마는 어느 순간에 텅 빈 집에 홀로 남겨지게 되셨다. 그 옛날 모진 가난으로 째지게 어려웠던 시절에도 항상 씩씩하시던 엄마가 고독 앞에서는 그만 아기가 되어버렸다. 눈물도, 서러움도 많아지셨다. 이제는 우리 자식들이 늙으신 엄마 곁을 지켜드려야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연변은 간다 연변이 연길에 있다는 사람도 있고 구로공단이나 수원 쪽에 있다는 사람도 있다 그건 모르는 사람들 말이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연변은 원래 쪽바가지에 담겨 황소등짝에 실려 왔는데 문화혁명 때 주아바이*랑 한번 덜컥 했다 후에 서시장바닥에서 달래랑 풋 배추처럼 파릇파릇 다시 살아났다가 장춘역전 앞골목에서 무우짠지랑 같이 약간 소문났다 다음에는 북경이고 상해고 랭면발처럼 쫙쫙 뻗어나갔는데 전국적으로 대도시에 없는 곳이 없는 게 연변이였다 요즘은 배타고 비행기타고 한국 가서 식당이나 공사판에서 기별이 조금 들리지만 그야 소규모이고 동쪽으로 동경, 북쪽으로 하바롭쓰끼 그리고 사이판, 샌프란시스코에 파리 런던까지 이 지구상 어느 구석인들 연변이 없을쏘냐. 그런데 근래 아폴로인지 신주(神舟)*인지 뜬다는 소문에 가짜 려권*이든 위장결혼이든 가릴 것 없이 보따리 싸 안고 떠날 준비만 단단히 하고 있으니 이젠 달나라나 별나라에 가서 찾을 수밖에 연변이 연길인지 연길이 연변인지 헷갈리지만 연길공항 가는 택시료금이 10원에서 15원으로 올랐다는 말만은 확실하다. * 주아바이 : 연변조선족자치주 초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지난 1970년 여름날에 있은 이야기이다. 우리 마을은 해란강이 굽이돌아 흐르는 오붓한 동네였다. 그때 하방호로 왔던 딱친구 옥주네가 시내로 돌아간다는 소문이 동네에 쫙 퍼졌다. 옥주와 친하게 보내던 친구들은 일요일, 시내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나는 걱정이 앞섰다. (돈은 어쩌지? 차비 20 전, 사진값 20전, 점심값 10전, 적어도 50전은 있어야 하는데. 이 돈을 누구와 달라지?) 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침침해 났다. 우리 집은 아홉 식구에 로동력이라고는 아버지와 엄마뿐이어서 일년 수입이 얼마 안 되였다. 다른 애들 같으면 의례 엄마한테 돈을 달라고 할 것이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엄마가 계모였던 것이다. 세상물정 좀 알기 시작해서부터 다시 말해 우리 엄마가 나를 낳은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 저도 모르게 눈치생활을 해왔다. 물론 우리 엄마는 나를 잘 대해 주었다. 우리집에 오셔서 낳은 내 아래 두 동생들은 조금만 잘못해도 호되게 꾸짖었지만 전처 자식인 나와 오빠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옛날이야기와 동화책속에 나오는 못된 계모들에 비해 더없이 착하고 인자하여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그 모습 다 벗고 포도들은 포도주가 된다 벗으라 한다 벗어야 한다 벗어라 벗자 마지막 한 장의 그... 마저도 속살과 속살끼리만 만나 만지고 부비고 삼키고 무너지자 맑은 그 빛깔 달콤한 그 맛 감미로운 그 향기 네가 나 되고 나는 너로 된다 그 모습 다 벗고 비로소 포도들은 포도주가 된다 해설 1997년에 발표된 시 “그 모습 다 벗고 포도는 포도주가 된다” 역시 깊은 인생철리가 담겨진 이미지시이다. 이 시에서 시적화자는 포도가 포도주로 되는 과정을 재현하면서 인간은 부단히 자기를 변신시키면서 자아를 완성하고 인생의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물론, 변신과정은 환락이 충만된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이 충만된 과정이다. 그래서 “마지막 한장의 그… / 마저도” 벗어야 하고 “만지고 부시고 삼키고 무너져야” 끝낸 “맑은 그 빛깔”, “달콤한 그 맛” 그리고 “감미로운 그 향기”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시의 밑바닥에는 시대의 밑바닥에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어제 밤에 눈이 내려 길은 상당히 미끄러웠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도 훨씬 차거웠고 거칠었다. 자가용을 몰고 역에 나가 시골에서 올라온 어머니를 마중해가지고 집 앞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창에서 집까지 가려면 몇 십 미터는 더 걸어야 했다. 나는 이렇게 춥고 미끄러운 날에 왜 부득부득 오시지요, 하고 어머니를 나무람하였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잔소리를 했다. 동네에서 있었던 일을 쉼 없이 얘기하셨다. 2년 전 겨울날, 어머니는 넘어지면서 손목을 크게 상해 고생한적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눈이 내리는 날에는 마실을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허지만 어머니는 아침에 통화할 때만 해도 우리 집으로 온다는 말씀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올라오시니 나는 좀 당황하였다. 길은 좀 경사가 지기까지 해서 한결 더 미끄럽고 걷기가 불편했다. 앞에서 궁둥방아를 찧는 사람도 가끔 보였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레 걸었다. 엎어지거나 넘어져서 상하면 큰일이다. 혹시라도 미끄러져 상하면 어쩌랴 한 발작 한 발작에 신경을 곤두세우고서 말이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더욱 으스러지게 잡았다. 어머니의 손은 차겁고 꺼칠